2022. 8. 25. 21:18ㆍ축구전술
게겐프레싱과 전제조건
볼프스부르크, 아우크스부르크, 마인츠에서 200경기 이상 출전한 구자철은 독일 축구와 한국 축구를 비교하며 아래와 같이 말했다.
구자철 : 템포가 많이 다르죠. 완전히 다르죠. 뛰는 양도 훨씬 더 많게 느껴지고, 프레셔도 많고, 스프린트 횟수에서 많이 차이가 나죠. 더 빠르게, 더 빨리 뛰어야 하고요, 더 빠르게 공격 나가야 하고 더 빠르게 수비를 도와줘야 하고, 더 빠르게 압박해야 하고, 그게 엄청난 체력 소모를 일으키죠.
소위 5대 리그라 불리는 이탈리아, 잉글랜드, 스페인, 독일, 프랑스와 K리그의 스프린트 횟수 및 순간 가속도를 비교했을 때 그 차이는 명확했다. 속도 구간을 총 다섯 개 구간으로 나눴을 때 Zone 5에 해당하는 스프린트 횟수는 5대 리그와 최소 25회, 최대 39회 차이가 났으며, 순간 가속도 횟수는 최소 11회, 최대 18회 차이가 났다. 한 번의 결정적인 스프린트로 득점과 실점이 결정지어진다고 생각한다면, 엄청난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샬케 소속으로 챔피언스리그 4강에 올랐던 우치다 아스토도 은퇴 기자회견에서 구자철과 비슷하게 말하며, 유럽 축구와 일본 축구 수준의 차이를 말했다.
우치다 아스토: 챔피언스리그 결승과 J리그 경기를 보면 다른 경기(스포츠) 구나 싶을 정도로 내가 느끼기엔 차이가 있다.
아래 첫 번째 그래프는 2010년도 중반 J리그 클럽들과 독일 클럽들 간 스프린트 횟수를 비교한 것이다. J리그 팀들의 경기당 평균 스프린트 횟수는 176회 미만이었지만, 분데스리가 팀들은 경기당 스프린트를 176회가 넘었다.
2021-22 시즌에는 바이에른 뮌휀이 248회로 1등을 차지했고, 우니온 베를린이 18개 클럽 중 210회로 꼴등을 차지했다. 그러나 J리그 18개 팀들 중에 스프린트 횟수를 200회를 넘은 팀은 단 한 팀 밖에 없었다. 독일 팀들은 시즌 34경기를 치르고, 일본 팀들은 38경기를 하기 때문에 체력적인 문제로 인해 스프린트 횟수의 차이가 생겼다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 24~26 경기만 진행된 2022 시즌 J리그 팀들의 스프린트 횟수를 계산해봐도 200회를 넘는 팀은 단 한 팀 밖에 없다. 고무적인 사실은 2010년 중반 176회를 넘는 팀이 단 한 팀도 없었지만, 2021년엔 4팀이나 등장했다는 것이다.
이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걸까? 오스트리아 3부 리그 감독으로 재직했던 일본인 마사키 모라스 감독은 볼을 가지고 있지 않을 때와 볼을 잃었을 때, 프레싱 액션의 강도 부문에서 일본 축구와 유럽 축구 간 우선순위의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마사키 모라스: 독일어권 나라에서는 공을 뺏기는 즉시 주체적으로 공을 빼앗으러(압박하러) 가야 된다는 인식이 있습니다. 특히 오스트리아에서는 2012년 랄프 랑닉이 레드불 잘츠부르크 스포츠 디렉터로 부임한 뒤, 강하게 공을 뺏는 축구가 정착됐습니다. 일본은 압박을 위해 상대에게 다가가도 1m 정도 앞에서 멈춰서 발을 내밀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제쳐지지 마라와 뺏기지 말라는 지시가 자주 있는 것 같습니다. 레드불에서는 압박하러 가서 1m 앞에서 멈추어 버리는 수비를 '화장실 스타일'이라고 불립니다. 양변기에 앉는 자세를 닮아서요. 거리를 좁혔는데, 왜 멈춰 버리는 거냐고 호통을 듣습니다. 거기서 멈춰도 상대에게는 아무런 위협도 아니라는 겁니다. 스프린트로 공을 뺏으러 갔으니 그대로 공을 가진 선수를 파고들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인터뷰와 데이터들을 종합해 분석했을 때, 유럽 국가와 아시아 국가 간 축구 수준의 차이는 프레싱의 강도에 기인하는 듯 하다. 정돈된 수비 국면에서의 프레싱에 대해서 다루는 내용은 꽤 있었지만, 전환 국면에서의 프레싱, 즉 게겐 프레싱에 대해 다루는 내용은 드문 것 같아 이에 대해 논의해보고자 한다.
게겐프레싱
게겐프레싱은 볼을 잃었을 때, 즉각적으로 상대방을 압박하는 전술이다. 이 전술 용어는 위르겐 클롭이 도르트문트에 부임하며 독일 챔피언이 되고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진출하는 등 활약하며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게겐프레싱은 종종 클롭만의 전유물로 묘사되는 경우가 있다.
위르겐 클롭: 제 생각에는 축구에 대한 우리의 접근 방식이 종종 과소평가되는 것 같습니다. 마인츠가 다른 리그보다 수비를 더 잘했다는 이유만으로 승격한 것이 아닙니다. 마인츠에서도 여러 시스템들을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것은 대부분 „그들은 단지 프레싱만 한다 “라고 묘사됩니다. 우리는 그런 식으로 느껴본 적이 없으며 진실에 대한 정당한 정의도 아닙니다. 우리는 게겐 프레싱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많은 의미가 있고 게임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게임에서 90퍼센트의 볼 점유율을 유지하는 것을 선호합니다. 궁극적으로 우리가 하는 일은 매일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축구를 한다고 해도 이 리그에는 우리와 똑같이 플레이할 수 있는 최소 5팀들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결정적인 순간에 누가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관한 것입니다.
비슷한 경우로 과르디올라도 공격 축구의 신봉자로만 묘사되는 경우가 있는데, 과르디올라 팀의 축구에서 핵심적인 것은 게겐프레싱이다. 그는 요한 크루이프의 승계자로서 축구를 정돈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는데, 요한 크루이프는 공격 축구는 깔끔한 테크닉의 사용, 공간 활용과 볼을 향한 압박으로 이루어진다고 말했다. 여기에서 볼을 향한 압박이란, 수비 국면처럼 정돈되고 조직된 상태에서 타깃 지점에 달려가고, 상대 선수를 멈추고, 한쪽으로 유도한 뒤 볼을 탈취하는 목적이 아니라, 볼 소유권을 잃자마자 혼란한 상황에서 즉각적으로 상대를 압박해 2차적인 공격을 이어 나가는 것을 말한다.
요한 크루이프: 나는 공격축구를 지향한다. 하지만 공격을 하기 위해 전방을 향해 수비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전방을 향해 수비하기 위해 공을 가진 상대방에게 압박을 가해야 한다. 이것을 쉽게 실행하기 위해 가능한 많은 라인을 만들어야 한다. 누군가 공을 소유하고 있다면 항상 한 명은 조금 앞에 있어야 하고 다른 한 명은 두텁게 그 옆에 위치해야 한다. 공을 소유하고 있는 선수와 앞뒤로 서있는 동료 두 명의 선수 사이 공간은 10미터 이상 벌어지면 안 된다. 거리가 벌어질수록 공을 잃을 위험이 높아진다. 나는 5개의 라인을 선호한다. 골키퍼를 제외하고 맨 뒤에 4명, 역삼각 형태에서 미드필더 1명, 조금 더 앞에 위치하는 미드필더 2명, 10번 위치 혹은 9번 위치의 공격수 그리고 2명의 측면 공격수와 함께 5개의 라인을 형성한다. 공격적인 축구는 우리 지역 센터서클 부근에서 상대 페널티박스까지의 영역, 45 미터 길이 60미터 넓이에서 이루어진다. 각 라인 간 길이는 대략 9미터다.
이 거리에서 동료 선수가 마크하는 선수를 다른 동료에게 쉽고 효율적으로 넘겨주는 게 가능하다. 공 뒤에는 항상 선수들이 있다 바르셀로나가 공을 잃은 후 압박을 가하는 모습을 보면 팀원들과 10미터 이상 떨어져 있는 선수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선수들은 항상 움직인다. 그 이유는 동료가 마크하던 선수를 놓치거나 다른 동료에게 넘겨주었을 때 신속히 압박을 하기 위함이다. 전방은 오직 한 명의 공격수와 양 측면 공격수를 위한 공간이다. 공격수가 9번이든 10번이든 5개의 라인을 형성하는 데는 차이가 없다. 공격하기 위해서 전방을 향해 수비하고 공을 향해 압박을 해야 한다. 공격수 한 명의 행동이 문제를 일으키지 않도록 공 소유 시 라인을 최대한 두텁고 정돈하여 세워야 한다. 이 게임 스타일은 횡패스를 지양한다.
게겐 프레싱은 볼의 소유권을 잃은 후 발생한다. 하지만 볼의 소유권을 잃은 후에 항상 게겐프레싱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상대팀이 볼을 탈취했을 때, 우리 팀이 즉각적으로 수비를 할 수 있을 경우 게겐프레싱을 작동시킨다. 하지만 우리 팀이 즉각적으로 수비를 할 수 없을 경우 후퇴를 통해 시간을 확보하고 구조와 기능을 재정비한다 (팔렌 라센: Fallen lassen). 게겐프레싱은 전방을 향한 전환으로, 후퇴는 후방을 향한 전환으로 이해될 수 있다. 하지만 두 가지 방법이 모두 혼재되어 나타날 수도 있다. 우리 팀 공격수가 볼을 잃은 후, 볼을 획득한 상대팀 공격수가 우리팀 최종 수비 라인을 향해 드리블을 시도할 경우, 최종 수비수는 후퇴를 하고 볼을 잃은 우리팀 공격수는 볼을 쫓아야만 한다.
수비 국면에서 정돈되고 조직된 팀 움직임을 통해 의도적으로 볼 탈취를 시도한 뒤, 공격으로 전환하는 것이 가능하듯 공격 국면에서도 마찬가지로 의도적인 공수전환을 계획할 수 있다. 이는 의도적으로 볼을 잃는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효과가 높지만 실패할 확률도 있는 스루패스와 같은 풋볼 액션을 도전적으로 시도한 뒤, 볼이 차단되는 장소를 예측해 압박하는 것이다. 즉 계획적 게겐프레싱은 볼을 잃는 지점을 계획적으로 계산해서 볼을 탈취한 뒤에, 높은 지점에서 연속적인 공격을 목표로 한다. 반대로, 기대하지 않은 상황에서 볼을 잃어버려 조직적인 대응이 조금 늦는 경우도 있다. 우연적 게겐프레싱은 특별한 목적성 없이 어떤 결과들이 중첩되어 필연적으로 볼을 잃게 되는 상황을 말하는데, 이는 팀 세부 전술 영역 범위 밖에 있다. 하지만 여러 가지 경기와 훈련 상황들을 통해, 전환을 선수들의 무의식에 입력시킨다면 계획적 공수전환과 우연적 공수전환 간 경계가 희미해지고 팀 단위로 계획적 게겐프레싱을 할 수 있는 자동화 단계에 이를 수 있다.
오스트리아와 독일에 압박 축구를 정착시킨 랄프 랑닉은 개인에 따라 다르지만 젊으면 젊을수록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24세, 25세가 지나도 배울 수 있지만, 그 속도가 한정된다고 생각한다. 특히 24세 정도까지 다른 스타일의 축구를 하다 보면 플레이 선택의 순서가 완성되어 버리고, 이를 리셋하는 것은 간단하지 않다고 한다. 랑닉은 잘츠부르크 선수들은 새벽 2시에 깨워도 공을 굴리면 바로 사냥 가는 습성이 있다고 말했다. 즉 전환에 대한 교육은 뉴런과 뉴런 사이의 연결망이 한창 증가하는 유소년 시기부터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볼을 빼앗긴 팀이 공수전환을 효과적으로 조직하고 상대에게 바로 압박을 걸며 공격을 늦추는 것이 가능하다면, 카운터 어택을 당할 위험을 회피하고 볼을 빼앗아 반대로 재역습으로 전환할 가능성도 생긴다. 공수가 전환되는 순간은, 플레이의 전개가 가장 가속되기 쉽고 그렇기 때문에 결정적인 장면으로 연결되기 쉬운 상황이다.
카를로스 안첼로티: 게겐프레싱을 실행하기 위해 팀을 끌어올리는 것은 최종 라인의 배후에 큰 공간이 남을 수 있다는 리스크와 밀접하게 연관되어있다. 볼을 잃었을 때 카운터 찬스를 주지 않고 상대의 공격을 늦춘 이후에 중요한 포인트 중 하나가 볼을 잃기 전, 공격의 국면에서 볼의 라인보다도 뒤에 있는 선수가 이미 올바른 포지션에 있는 것. 구체적으로는, 볼의 라인보다도 바로 앞에 있는 적의 선수를 마크하고 볼을 잃었을 때 프리가 되는 것을 막는 것이다.
게겐프레싱이 팀 단위에서 성공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전제 조건은 아래와 같다.
- 볼 근처 선수들의 포지션
- 볼을 가지고 있는 선수와의 간격
- 볼 근처 선수들간 간격
- 선수들의 시야
- 볼 소유 시 효과적인 패스 옵션을 생성하는 것뿐만 아니라 볼을 잃었을 때 직, 간접적으로 우리 골대를 향한 경로를 차단할 수 있는 방법
오른쪽 그림은 양 풀백과 양 윙이 사이드 라인 끝에 위치하며 최대의 너비를 확보한 상황이다. 또한 중앙 수비수들이 공격 작업 간, 과도하게 뒤로 물러서서 미드필더와 중앙 수비수 사이에 필요하지 않은 빈 공간이 발생했다. 이 상황에서 빌드업을 할 때, 볼을 잃게 된다면 측면에서 복귀하는 속도도 늦을 뿐만 아니라 중앙 수비수는 무르는 수비를 할 수밖에 없다. 반대로 왼쪽 그림은 양 풀백이 빌드업 국면에서 이미 좁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중앙 미드필더와 공격수 간 간격도 촘촘하기 때문에, 볼을 잃자마자 즉각적으로 대응해 프레싱을 가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상대가 역습을 전개함에 있어 가속을 붙이지 못하게 방어함과 동시에, 볼을 즉각적으로 탈취한 뒤 재역습 혹은 공격 작업을 지속할 수 있다.
공격 시 포지션과 수비 시 포지션을 옮겨 다니는 것을 프라이부르크 감독 크리스티안 슈트라이히는 Schwimmende XYZ라고 표현했는데, 이는 포지션간 수영을 하며 옮겨다니는 것을 비유적으로 말하는 것이다. 이 공격, 수비, 전환 간 최적의 Schwimmende XYZ를 찾는 것도 성공적인 게겐프레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축돌이
UEFA B / DFB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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